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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호 유럽 진출 골키퍼' 권정혁, 무한도전의 삶을 디자인하다 (1편)

2020.09.07

 

'한국 1호 유럽 진출 골키퍼' 권정혁, 무한도전의 삶을 디자인하다'
 

 


[SPORTS KU=
글 유승완 기자, 사진 박채원, 박종수 기자/ 인천유나이티드, 권정혁 본인 제공] 삶은 여러가지 '해프닝'의 연속과도 같다. 상상한 적 없던 일이 갑자기 일어나기도 하고, 별 뜻 없이 시작했던 무언가가 나중에는 큰 결과물로 돌아오기도 한다. 권정혁(신방97)의 삶도 그랬다. 골킥을 잘 차지 못해 습관처럼 해온 킥 연습은 결국 84m를 날아가 골이 됐고, 위성 TV로 호나우두의 플레이를 보며 가진 막연한 동경은 10여 년 후 유럽에서의 러브콜로 돌아왔다. 그라운드를 떠나, 이제는 '스타트업 대표'라는 이름의 삶에 도전하고 있는 권정혁의 이야기를 SPORTS KU가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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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혁 Profile>

생년월일: 197882

출신학교: 부평초 - 부평동중 - 부평고 - 고려대

포지션: 골키퍼
프로경력: 울산현대(2001-2004) - 광주상무(2004-2006) - 포항스틸러스(2006-2007) - FC서울(2008) - 로바니에멘팔로세우라(핀란드, 2009) - VPS바사(핀란드, 2010) - 인천유나이티드(2011-2014) - 광주FC(2015) - 부천FC1995(2016) - 경남FC(2016) - FC의정부 (2017-2018) 

■ 태생부터 골키퍼, '탄탄대로'를 걸었던 학창 시절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다. 그만큼 골 넣는 공격수가 가장 주목받기 마련이고 골을 '막는' 골키퍼는 냉정히 말해 인기 포지션이라고 보기 힘들다. 실제로 이전에는 다른 포지션을 소화하다가, 팀의 상황이나 경쟁을 위해 골키퍼로 전향하는 사례도 꽤 많았다. 하지만 권정혁은 처음 축구를 접할 때부터 골키퍼로 시작해, 선수 은퇴를 선언하기 까지 축구 인생 내내 골문을 지켰다.
 

 "처음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골키퍼였습니다. 사실 어릴 때는 축구를 할 생각이 없었어요. 코치님의 권유에도 축구를 안 한다고 했는데, 4학년 때 축구부만 모아놓은 반에 제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걸 보고 밤새 울기도 했죠(웃음). 당시 부모님이 '왜 하기 싫어하는 애를 자꾸 시키려고 하냐'고 따지시니까 감독님이 제게 '딱 하루만 해보고 재미없으면 하지 마라'고 하셨어요. 근데 또 해보니까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 뒤로 그만둔 적 없이 딱 30년을 골키퍼로 뛰었네요."

 그 후 축구 명문 부평동중, 부평고를 거치며 권정혁은 팀의 주전 골키퍼로서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특히 부평고 시절에는 꾸준히 청소년 대표로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등, 주목받는 골키퍼 유망주로서 희망찬 미래만이 기다리는 듯했다.
 

 "돌아보면 학창 시절 좋은 지도자분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감독님이 특히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게, 당시 저를 비롯해 김남일(성남FC 감독) 선배처럼 청소년 대표, 나중엔 프로에 진출헀던 사람들이 대부분 초등학교 때 포지션 그대로 선수 생활을 했거든요. 그 후 부평고 시절엔 자신감이 굉장히 높았어요. 1학년 때는 전국체전에서, 2학년 때도 전국대회에서 우승했거든요. 청소년 대표 때도 주전은 아니지만 한 학년 월반해 선발됐고요. 그러다 보니 그때는 '난 당연히 선수로서 잘되겠지' 생각헀던 것 같아요. 당연히 국가대표, 프로 선수가 될 줄 알았죠. 그 뒤가 얼마나 험난한지는 모르고 (웃음)."



 

 

■ 고려대 '황금세대'의 일원,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다

  부평고 2학년 때 전국대회를 우승한 이후 이미 고려대로의 진학이 결정된 상황, 고대하던 입학을 앞두고 권정혁은 보통의 체육특기자 학생들과는 다르게 체육교육학과가 아닌 신문방송학과로의 진학을 결정한다. 조금은 다른 선택이었다


 "고려대 입학이 결정되고 나서, 과를 결정해야하는 상황이었어요. 당시 친척 중에 기자님이 계셨는데, 신방과로 가면 영어나 수학은 몰라도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나름대로 언어 영역은 수능에서도 점수가 높아서(웃음). 부모님도 그렇고 저도 대학교에 가면 공부를 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체육특기자 학생들이 자유롭게 과를 선택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고려대 1학년 시절에도 청소년 대표로 뽑히며 선수로서 '장미빛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권정혁은 현재가 미래의 성공을 반드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님을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C제로 룰'은 상상도 못 할 시절, 하루 내내 운동만 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헀을 당시의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공부에도 손을 놓지 않은 것이다. 신방과 특성상 일반 학생들과 똑같은 수업을 들어야 해 힘들었지만, 없는 시간을 쪼개 공부한 결과 4학년 때는 3점대 학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1학년 1학기 때만 해도 학사 경고를 받기도 했어요(웃음).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1학년 2학기때부터는 수업을 거의 다 들었던 것 같네요. 그전까지 공부하던 사람이 아니라 많이 부족했어요. 나중에는 수업만 들어서는 따라가기가 힘드니까 학기 초부터 미리 수업 교재나 필요한 도서를 읽어두고 갔어요. 레포트도 거의 다 제출했고요. 하지만 당시엔 단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어요. '운동선수가 왜 공부를 하냐' 하고, 축구부 내에서도 감독님은 좋아하셨는데, 선배들은 안 좋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셨던 것 같아요. 물론 꿈은 크게 꾸는 게 좋지만, 선수라는 게 언제 다쳐서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니겠어요? 고려대에 와서도 운동을 관두는 사람이 태반인데, 현실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놓는 게 살아가는 데에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또 대학 시절 아니면 언제 또 공부를 할 수 있겠어요


 당시 고려대 축구부는 그야말로 '황금세대'의 라인업을 자랑하는 강팀이었다. 박동혁(체교96, 충남아산 감독), 박진섭(체교96, 광주FC 감독), 차두리 (신방99, 오산고 감독) 등 내로라하는 유망주들이 가득한 가운데, 권정혁도 주전 골키퍼로서 당당히 대학선수권 대회 2연패를 함께하며 이름을 남겼다. 어디 축구부뿐이었을까. 가히 대학 스포츠, 그리고 고려대 운동부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90년대다. 당시 고려대 선수들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졌다. 고려대 시절 기억에 남는 일화나 추억이 있냐는 지물에 권정혁은 미소를 보이더니 잠시 과거로 떠났다.

 

2편 계속됩니다.


유승완 기자

Copyright ⓒ 고려대학교 스포츠 매거진 KU

기사제공 고려대학교 스포츠 매거진 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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