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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97학번' 권정혁, 후배들에게 전하는 도전 이야기

2019.06.26


 

[인터뷰 포 U]는 대학 선수들을 위한 멘토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먼저 축구인생을 경험해 본 그들, 후배들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을까? 

 

[KUSF=서울, 사진 본인 제공/ 글 박건도 기자] “선수 생활 매 순간이 도전이었어요. 아직도 끝나지 않았어요.”

 

선수생활 16년을 뒤로한 권정혁의 인생은 아직도 도전 중이다. 오히려 “지금이 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매 순간의 도전을 즐기는 사람, SPOIT 대표 권정혁을 만났다.

 

올해 3월, 권정혁은 SPOIT를 창립했다. 축구 레슨을 원하는 일반인-은퇴 선수를 이어주는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아직은 사업 초기 단계. 사업자금 마련 등 처리할 일이 산더미다. 현재 스포츠 강연 사업 등으로 이름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축구 선수 인생은 한 치 앞도 몰라요.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운 없게 부상을 당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둘 수도 있죠. 평생 축구만 해왔던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분들에게 딱 맞는 일이 축구 레슨이라고 생각했어요. 최근 아마추어 축구 열풍으로 레슨을 원하는 수요가 늘어났어요. 그런데 막상 어디서 배워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죠. 그래서 아마추어와 청년 은퇴 선수를 이어주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어요.”


                                            ▲권정혁의 핀란드(VPS 바사) 시절

 

 

뒤늦게 찾아온 전성기, ‘최초 유럽 진출 골키퍼’

 

권정혁은 본인 선수 생활을 ‘길고 가늘다’고 표현했다. 햇수로 16년,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유럽으로 눈을 돌려 뒤늦은 전성기를 맞았다. 학생 시절부터 해왔던 영어 공부가 빛을 발했다.

 

“94년도에 위성중계를 처음 접했어요. 유럽 축구를 처음 봤는데…. 다르더라고요. 96년도 호나우두(브라질)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후 매 경기를 챙겨봤어요. 지금 생각해도 ‘미친’ 퍼포먼스였죠. 이에 매료되어 ‘언젠가 유럽팀을 꼭 가보겠다’고 다짐했어요. 대학교 입학 후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단어장 같은 책을 사서 독학했죠. 꾸준히 하다 보니 졸업할 때쯤 회화가 트이기 시작하더라고요.”

 

“프로 진출 후에 외국인 선수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공교롭게도 브라질 선수들과 친해지더라고요. 영어 공부를 해봤어서 다른 언어가 쉽게 늘었죠. 단어장을 챙겨다니며 계속 대화를 시도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 친구들이 즐거워하니 저도 덩달아 신나서 계속 얘기했죠. 신기하게도, 브라질어가 익숙해질 때쯤 예전에 배웠던 영어 회화도 트이더라고요.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FC서울에 있을 때 고생을 많이 했어요. 6개월 정도 다리를 절었던 것 같아요. 신체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때 에이전트와 외국에 갈 수 있는 팀들을 알아봤죠. 1년 넘게 온갖 팀들에게 연락을 돌렸어요. 운 좋게 핀란드 리그 팀(로바니에멘 팔로세우라)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쪽 단장님이 저에게 물었어요. 너 정말 영어 할 줄 아냐고(웃음). 가능하다고 한 후 미팅을 했어요. 마침 그분이 박지성 선수의 팬이더라고요. 덕분에 잘 풀려서 그 팀에 합류했죠.”

 

이적 이후 권정혁은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 K리그와 다른 훈련 시스템이 몸에 잘 맞았다고 기억했다. 늘어난 개인 훈련시간으로 몸을 만들었고, 좋은 경기력으로 다가왔다. 그의 ‘뒤늦은 전성기’가 시작됐다.

 

“이적 이후 몸이 빨리 회복됐어요. 국내에 비해 긴 개인훈련 시간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내 몸을 만들 수 있는 시기였죠. 잘 쉬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이 시기에 배웠어요. 몸이 좋아지니 기량이 많이 올라왔어요. 전에는 생각도 못 한 아크로바틱한 동작들이 나오더라고요. 한 시즌을 잘 치르고 나니 타 팀에서 오퍼가 오더라고요. 다음 해 중위권 팀으로 이적했죠. 그 시즌에 리그 베스트 11에 드는 영광을 누렸어요. 축구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쁜 순간이었죠.”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 권정혁

 


양발 골키퍼, K리그 최장거리 골, 한 시즌 전 경기 출전….

 

권정혁을 설명하는 수많은 수식어. 공교롭게도, 데뷔 초까지 그는 킥과는 거리가 멀었다. 팀 내 스위퍼가 킥을 담당했기에 중요성을 크게 못 느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권정혁은 이에 굴하지 않고 수없이 연습을 거듭, ‘양발 골키퍼’, ‘리그 최장거리 골’ 등의 수식어를 얻었다.

 

“프로 입단 후 초반엔 출전을 많이 못 했어요. 나 자신이 멈춰있는 느낌이었죠. 가만히 있으면 뭐하겠어요. 그저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죠. 특히, 막는 건 곧 잘했는데 킥이 너무 부족 하더라고요. ‘너 프로 맞냐’는 소리도 들었어요(웃음). 그때 이후로 킥 연습을 시작했어요. 팀 훈련 후 개인적으로 하루 30분씩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감각을 찾았어요. 특히, 상무 시절에 많이 발전했어요. 제대할 때쯤 중앙선에서 골대 상단(크로스바)을 맞추는 감이 생겼어요. 후에는 최장거리 골까지 기록하게 됐죠.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공 못 차는 골키퍼’가 이렇게 바뀌었다는 것 말이죠. 그만큼 연습이란 게 참 무섭더라고요.”

 

“핀란드에서 2시즌이 끝난 후 인천 유나티이드로 왔어요. 가장 경기를 많이 뛴 팀이 됐죠. 제 고향 팀이다 보니 정서적으로 안정된 시기였던 것 같아요. 경기력도 한창 올랐었죠. 지난 경험들이 많이 녹아 나와서 가능했어요. ‘절대 다치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뛰다 보니 전 경기 출장 기록까지 세우더라고요. 잊지 못할 기억이죠.”

 

권정혁이 얘기하는 축구와 공부

 

“학생들이 축구 말고 다른 일에도 도전해봤으면 좋겠어요.”

 

남들과는 다른 선수생활을 보냈다. ‘별종’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축구선수라면 내내 축구만 하지 않을까. 권정혁은 편견을 깨고 학업-축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내가 공부하는 데 있어 시선이 좋지만은 않았어요. ‘무슨 축구선수가 공부를 하냐?’ 라는 비아냥도 들었죠. 주전으로 못 뛸 당시에 유독 그런 얘기를 많이 들은 것 같아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데도 불구, 권정혁이 공부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선수 생활은 영원하지 않아요. 선수들은 ‘축구’를 제외한 본인 인생을 고민해 봐야해요.”라고 조언했다.

 

“선수들은 합숙생활을 해요. 24시간 내내 축구에서 벗어날 수가 없죠. 저도 어제 경기, 오늘 경기…. 동료들과 내내 축구 얘기만 했어요. 축구부 분위기가 대부분 그렇죠. 인생 전체에 대한 교육이 너무 부족해요. 선수 생활은 생각보다 짧은데…. 길어도 30대에 대부분 끝나잖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뭘로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대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했죠. 특히, 2학년 때부터 모든 과제, 시험을 다 봤어요.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공부했어요. 아무래도 대회가 시작하면 시간이 부족하니 학기 초부터 예습했죠. 그러다 보니 3, 4학년때 공부가 많이 늘더라고요. 학점도 꽤 좋았어요(웃음).”

 

권정혁은 이 속에서 노력을 배웠다. 그는 “물론 그때 배운 과목이 모두 생생하게 생각난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러나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해요. ‘축구 말고도 뭐든지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
 

박건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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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KUSF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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