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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토리] - 권정혁 스포잇(SPOIT) 대표

2021.10.07

국내 최초 유럽 진출 골키퍼…은퇴 후 ‘인증 사회적 기업’ 설립·운영

 

“핀란드처럼 우리나라에도 운동선수의 은퇴 후 삶을 돕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프로축구연맹과 연계해 은퇴한 선수와 가정형편이 어려운 유망주 선수를 연결하는 멘토링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죠. 예전과 다르게 요샌 돈이 없으면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없잖아요. 수업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스포츠를 선물하고 급작스럽게 은퇴한 선수들에겐 미래를 준비하는 디딤돌을 놓으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초등학생 축구선수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무대에서 활약하고 국내 프로축구 1부리그에 입단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바로 0.8%다. 그중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확률은 0.18%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려운 바늘구멍을 뚫고 축구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벗어날 시점이 되면 갑자기 바깥 삶을 준비하는 건 쉽지 않다. 더우기 예기치 못한 시점에 은퇴라도 하게 되면 새로운 직업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운동에만 전부를 바쳐야 하는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현실이다.
 
권정혁 스포잇(SPOIT) 대표(43)는 이 문제에 주목했다. 국내 최초 유럽 무대 진출 골키퍼, K리그 역대 최장거리(85m) 골 등의 기록을 보유한 그는 은퇴 선수 진로 문제 등 스포츠 분야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9년 스타트업 스포잇을 설립했다. 현재 스포츠 CSR(기업 사회적 책임)과 스포츠영상서비스를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는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스포잇 사무실을 방문해 권 대표와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17년 간 프로선수생활 끝내고 창업으로 인생2막 시작
 
권 대표는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이다. 1996년 아시아 학생 선수권 대표, 1997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국가대표를 거쳐 2002년 북중미 골드컵 국가대표에 선발되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프로선수로는 2001년 울산현대에서 시작했고 이후 광주상무, 포항스틸러스, FC서울 등에서 활약했다. 2009년 핀란드 1부리그 로바니에멘 팔로세우라(RoPS)로 이적하며 국내 골키퍼로서는 최초로 유럽무대에 진출했다.
 
이후 2011년 국내로 다시 돌아와 2016년까지 인천유나이티드, 광주FC, 부천FC, 경남FC 등에서 뛰었다. 2017년부터는 FC의정부에서 플레잉코치로 활약하다가 2018년 2월 그라운드를 떠났다. 마흔 살까지 줄곧 축구선수로 살아온 그는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는 대부분의 선수들과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바로 창업이었다.
 
“축구선수로 충분히 살았다고 생각해 지도자보다는 다른 걸 하고 싶었어요. 사업을 하신 부모님의 영향도 컸고요. 선수생활 때 막연하게나마 ‘나만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어서 창업을 시작한 것 같아요. 특히 핀란드 리그에서 보낸 선수생활이 커다란 영향을 줬어요. 핀란드 선수들은 은퇴 후 준비가 잘 돼 있더라고요. 또래 선수들 중 일부는 은행원 자격증을 취득해 은퇴 후 은행원을 준비하는 선수가 있었고 또 일부는 엔지니어 자격증을 취득해 제2의 삶으로 엔지니어를 준비했죠. 이런 걸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부터 진지하게 은퇴 후 제2의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준비했던 것 같아요.”

 

평생 축구만 했던 그에게 창업이라는 도전은 쉽지 않았다. 은퇴하고 나서 5개월 정도 축구선수 출신인 이상기 QMIT 대표 옆에서 창업 과정을 배웠다. 쉽진 않았다. 물 밖에서 수영을 배우고 물에 들어가 수영하는 것처럼 이론과 실무의 차이는 컸다. 힘들었지만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함께한 창업 동료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초창기 어려움을 버틸 수 있었다.
 
“준비한다고 했지만 막상 하다보니까 모든 게 막막하고 새로 배울게 많고 생소해서 어려웠던 것 같아요. 초창기 7~8개월 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불안한 마음이 컸어요. 어떨 때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우울하기도 했죠. 그래도 창업할 때부터 함께한 친구들이 매우 낙천적이어서 힘이 돼줬어요. 심히 걱정하고 있으면 ‘대표님, 그건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요’라면서 도와줬죠. 그들의 궁극적인 에너지로 초창기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은퇴선수와 스포츠 소외계층을 연결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성장
 
권 대표가 이끌고 있는 스포잇은 스포츠 CSR 전문기업이다. K리그 드림어시스트, KFA 레전드 클리닉, KFA 레전드 플레이그라운드 등 다양한 축구 관련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핵심 서비스는 △마케팅(스포츠 이벤트 기획·운영) △미디어(풋볼 스카우팅 콘텐츠 기획·제작) △에듀(스포츠 강습) 등이다.
 
“마케팅의 경우는 주로 대한축구협회, 프로축구연맹 등의 사업을 위탁운용하는 사회공헌활동이에요. 은퇴한 선수들이 스포츠 소외계층을 찾아가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이죠. 이러한 활동으로 최근에 고용노동부에서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았어요. 앞으로도 공공기관 및 단체에서 예산을 받아 이러한 활동을 키워나가고 싶어요.”
 
또한 ‘풋앤볼+’라는 풋볼 콘텐츠 서비스를 출시해 프로와 국가대표 선수를 주 고객으로 플레이어 리뷰 영상도 제작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선수들의 대학 진학 및 해외 유학에 필요한 영상 서비스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또한 올 상반기엔 창업 진흥원의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돼 인공지능(AI) 기술 기반의 자동 영상 분류 및 편집 기술을 개발하며 한국형 스카우팅 플랫폼을 구축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미디어는 스포츠영상 서비스에요. 프로선수들이 이적할 때 필요한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드는 일이죠. 고등학교 선수들도 대학교 입시할 때 포트폴리오로 하이라이트 영상이 필요한데 이러한 영상도 만들고 있죠. 스포잇에는 현재 마케팅 팀이랑 영상 팀이 등이 있어서 체육단체들에서 영상 관련 일을 주문 받으면 제작·편집을 진행하죠. 최근엔 한 축구교실과 합쳐져서 오프라인에서도 축구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에요.”
 
사업 아이템으로 은퇴 선수의 제2의 삶을 돕는 데 주목한 이유가 궁금했다. 답은 간단했다. 운동선수의 미래는 늘 불안하기 때문이다. 프로선수는 소속팀과 계약을 끝내고 새로운 팀과 계약을 맺기 전까지 실업자에 가깝다. 또한 부상의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다. 다른 분야를 도전하려고 해도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정보도 없기에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핀란드에서 2년 정도 선수생활을 했을 때 핀란드 선수들이 은퇴 후 준비를 굉장히 잘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스스로 노력을 했겠지만 국가적인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죠. 적성검사를 받은 최소 1년 간 기존에 받았던 연봉의 80%를 보장받으며 교육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더라고요. 불안하지 않게 제2의 삶으로 넘어갈 수 있는 점이 되게 좋다고 느껴졌죠.”
 
“우리나라에도 이만큼은 아니라도 조그맣게나마 은퇴 선수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프로축구연맹과 연계해 은퇴한 선수들이 차상위계층 등 형편이 어려운 유망주 선수를 가르치는 멘토링 서비스를 시작했죠. 멘토는 유명한 선수들 포함해 23명 정도 있어요. 거마비 형식으로 이들에게 20만원씩 지급하죠. 유명한 선수들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유명하지 않은 상태로 은퇴한 선수들한테 20만원은 적지 않은 수입이 되죠.”
 
직원들에게 권리·대가를 주며 함께 성장하는 회사를 꿈꿔
 
권 대표는 스포잇의 특장점으로 사회적 가치를 강조했다. 스포잇은 올해 6월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2021년 사회적기업가 페스티벌’에서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달에는 은퇴선수와 유소년선수, 여자축구 등 스포츠분야의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특히 권 대표는 노동자도 경영에 참여하는 북유럽·독일식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시스템에 주목했다.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시스템을 갖춘 회사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북유럽에서는 주식이 없어도 노동자면 이해당사자이기에 한 10~30% 정도의 의결권을 주더라고요. 우리나라하고는 무척 다른 모습이죠.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주면 마치 자기 회사의 일인 것처럼 행동하고 일하게 되니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오히려 생존 방식이라고 생각했죠.”
 
“회사를 처음 설립할 때 직원한테 ‘이러한 방식의 회사를 운영하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괜찮게 들렸는지 같이 회사를 시작했죠. 회사가 그런 시스템이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해서 사회적기업까지 오게 됐어요. 사회적 가치가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 직원들이 ‘내가 열심히 일을 해봤자 대표만 잘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회사에서 일하면 정당한 권리와 대가가 따르는 구나’라고 느끼고 있어요.”
 
“사회공헌활동 자체도 만족감을 줘요. 저소득층 아이들의 경우 부모님들이 바쁘다보니 충분한 관심과 돌봄을 못 받잖아요. 그런데 프로리그에 뛰었던 유명했던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들과 만나 축구를 가르쳐주면서 아이들의 자신감을 키워주고 긍정적인 태도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면 저를 포함해 임직원들 모두 보람을 느껴요.”
 
창업 3년차 권 대표는 롤모델로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을 꼽았다. 술이나 담배, 골프, 회식, 의전 없이 대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술·담배를 하지 않는 권 대표로서는 차 부회장의 경영방식과 성과에 용기를 얻고 있다.
 
“한국에서 사업한다고 하면 술 마시고 골프를 쳐야 한다고 하잖아요. 이러한 현실을 무시할 순 없지만 차 부회장님은 그런 것 없이 기업을 잘 이끌고 나가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저 역시 술을 못하고 담배도 안 하기 때문에 회식을 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차 부회장님과 제 라이프스타일은 비슷하죠. 그분의 경영방식과 성과가 제게 용기를 주는 것 같아요.”
 
끝으로 권 대표는 혼자만 생각하기보다는 여러 명과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회사를 꿈꾼다고 전했다. 또한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은 만큼 향후에도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살아남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도 표했다.
 
“프로선수생활을 오래 해봐서 아는데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해서 크게 의미 없어요. 성과를 내느냐 못 내느냐가 중요하죠. 기업도 비슷한 것 같아요. 현재 정부지원 사업에서 선정된 것으로 정부에서 보조를 받으며 운영하고 있어요. 아직 자생력을 100%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아직 가야할 길은 많지만 실적을 내며 살아남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윤승준 기자 sjyoon@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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