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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호 유럽 진출 골키퍼' 권정혁, 무한도전의 삶을 디자인하다 (3편)

2020.09.07


 

 "처음에 (핀란드)로 갔을 때는, 감독님이 절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그때는 경기를 잘 못 뛰었죠. 이후에 수석코치님이 팀을 맡으셨는데, 훈련 때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나 봐요 그때부터 한 시즌 내내 주전으로 뛰기 시작헀죠. 경기에 계속 나서다 보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경기 운영에 대한 감각도 점점 찾을 수 있게 됐어요."

권정혁이 핀란드에서 얻은 것은 출장 기회만이 아니었다. 리그에서 활약하는 핀란드 선수들이 은퇴 이의 인생계획을 대부분 세워놓고 준비하는 것을 보며, 권정혁은 자신을 비롯한 한국의 축구선수들이 은퇴 이후의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선수 생활 이후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거든요. (핀란드에서 뛸 때) 동료들은 다들 계획이 있었어요. 당시 주장은 은행원 자격증을, 중앙 수비를 보던 친구는 엔지니어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죠. 유럽에서는 그게 흔한 일이라고 하더라구요. 운동하면서도 미래의 계획을 함께 세울 수가 있는데, 한국에선 '운동을 하면 운동에만 집중하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운동을 24시간 내내 한다고 실력 또한 끝없이 느는 건 아닐 텐데 말이죠."



 

2년 동안의 핀란드 리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K리그, 권정혁이 향한 곳은 고향 팀 인천유나이티드였다. 익숙한 도시, 환경에 더해 유럽 무대에서 얻은 경험과 발전한 기량으로 권정혁은 K리그 데뷔 후 약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붙박이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인천의 판 데르 사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실 유럽에서 더 오래 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실제로 스웨덴 팀과 얘기가 오갔었는데, 계약상의 문제로 다시 한국에 돌아오겠다고 결정하게 된 거죠. 당시 인천 허정무(연세대74,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 감독님이 제 경력을 높게 평가해주신 것 같아요. 고향이기도 한 만큼 제 마음도 편하고,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죠."

 4년 간의 인천 생활 동안, 권정혁이 가장 빛났던 때는 바로 2013시즌이었다. 35세의 나이로 시즌 내내 맹활약을 펼친 끝에, 그해 유일하게 전 경기, 전 시간 출장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화룡정점은 그해 7월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였다. 자기 진영에서 멀리 찬 공이 그대로 상대 골키퍼를 넘겨 선제골을 기록하게 된 것. 이는 30년이 넘는 K리그 역사에서 골키퍼가 기록한 첫 필드골이었고, 아직가지 K리그 역대 최장 거리 (84m) 골로 남아 있다.

 "저는 그 골이 그저 '해프닝'이었다고 생각해요. 경기에 나서면 50번에서 100번의 터치를 할 수 있는데, 그 수많은 터치 중 한 번이었을 뿐인 거죠. 말하자면 '럭키샷' 같은 거에요. 그런데 약간 아이러니하기도 해요. 전 프로에 가서야 킥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었으니까. 킥에 대한 결핍이 있어서 계속 훈련을 했던 거고, 그러다 보니 제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킥이 어느 순간 최장 거리 골로 연결된 거잖아요? 지금도 많은 분이 그 골로 저를 기억 해주시고요."

 인천에서의 활약 이후,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 된 권정혁은 이후 광주, 부천, 경남 등을 거쳐 K3리그 의정부FC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한 이후 약 16년간 지속한 오랜 선수 커리어의 종지부를 찍었다. 자칭 '가늘고 긴' 선수 생활의 마무리였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오래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 월드컵을 보는데, 잉글랜드의 피터 쉴튼이 마흔 살이 넘어서도 대표팀 골문을 지키는 게 인상적이었거든요. 사실 제가 프로 처음 갈 때만 해도 서른 넘으면 노장이었고, 30대 중반까지 선수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어요. 저 같은 경우는 그래도 선수를 오래 하는 동안 천천히 내려오면서 은퇴 후의 준비도 차근차근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4편 계속됩니다.


유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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